“역사는 새롭게 쓰이라고 있는 것.”
황인범(28, 츠르베나 즈베즈다)이 과거에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우승만을 향해 달리고 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오는 7일 0시(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메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요르단과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을 치른다.
한국은 연이은 120분 혈투 끝에 준결승 무대를 밟았다. 16강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이겼고, 8강에선 연장 전반 손흥민의 프리킥 골로 2-1 승리를 거뒀다. 두 경기 모두 후반 추가시간에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리며 기적을 썼다.
요르단은 이라크와 타지키스탄을 물리치고 올라왔다. 이라크와 16강전에선 후반 추가시간 두 골을 뽑아내며 3-2 역전승을 완성했고, 그다음엔 ‘돌풍의 팀’ 타지키스탄을 1-0으로 제압했다. 요르단이 아시안컵 4강까지 진출한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제 한국과 요르단은 결승행 티켓을 걸고 맞붙는다. 약 2주 만의 리턴 매치다. 두 팀은 이미 조별리그에서 만난 적 있다. 첫 대결에서는 치열한 접전 끝에 2-2로 비기며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경기를 하루 앞둔 5일 도하 메인 미디어 센터(MMC)에서 양 팀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은 클린스만 감독과 핵심 미드필더 황인범이 참석했다.
클린스만호는 이번 대회에서 무실점 경기가 단 하나도 없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6골을 내주며 역대 최다 실점을 기록했고, 16강과 8강에서도 한 골씩 실점했다. 이에 한 외신 기자는 “대회에서 8골을 실점한 팀이 우승한 역사는 없다. 여기에 김민재도 경고 누적으로 뛸 수 없는데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라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황인범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역사는 새롭게 쓰이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8실점을 했다고 우승하지 못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라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다. 실점도 많이 했지만, 그만큼 득점도 더 많이 했다는 게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이어 황인범은 “내일 민재 없이 경기한다고 해서 우리 수비가 흔들리거나 안 좋아질 거라곤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뒤에서 준비하고 있는 선수들이 얼마나 좋은 선수들인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을 믿는다. 누가 나가든 간에 자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실점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팀이란 걸 보여드리겠다”라고 덧붙였다.
정상에 가까워져가는 만큼 부담도 커질 터. 황인범은 “부담감과 압박감은 축구선수라면 언제나 느끼기 마련이다. 그런 압박감이 있는 상황이야말로 선수로서 누리는 특권이다. 문제 되지 않는다. 우리 팀원과 코칭 스태프들을 믿는다. 또 국민분들이 우리를 믿어주시는 만큼 그 믿음에 보답하려는 동기부여로 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잘 이겨내고 있다. 내일 경기도 부담감과 함께 경기에 나선다고 해도 전혀 문제 없을 것이다. 꼭 좋은 결과로 팬분들께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라고 강조했다.
황인범은 지난 호주전에서 치명적인 패스 실수로 선제골의 빌미를 내줬지만, 동료들의 도움으로 패배를 피했다. 그는 “너무 많은 걸 배우고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개인 스포츠를 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대회를 치르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실수를 하듯이 나 역시 그랬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게끔 해준 팀원들이 호텔에서 쉬고 있다. 그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팀 스포츠인 축구를 택해서 외롭지 않게 의지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다행”이라고 말했다.
또한 황인범은 “앞으로 다른 누군가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혹은 실수를 범했을 때 내게 의지할 수 있도록 경기장에서 모범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남은 대회 동안 이런 소중한 추억을 멋진 드라마로 장식할 수 있게 모두 더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매 순간 느끼고 있다”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황인범은 “‘득점을 하자’, ‘실수를 하지 말자’ 이런생각을 하고 있진 않다. 실수는 축구의 일부다. 실점으로 이어진 부분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만큼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싶다”라며 “지금과 팀을 돕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대회가 끝났을 때 내 플레이를 자세히 분석하는 게 맞다. 이미 지난 경기는 많이 잊어왔다. 다음 경기에만 모든 집중을 쏟고 있다. 모두 어떻게 하면 팀이 이길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다. 내일도 어떻게 팀을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뛰겠다”라고 다짐했다.